- 색채 마법사가 잠든 언덕을 찾아서

프랑스 남부, 눈부신 코트다쥐르 (톨롱에서 망통으로 이어지는 남프랑스의 푸른 해안가)의 태양 아래 중세 요새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아름다운 마을이 있다.

바로 '생폴드방스'(Saint-Paul-de-Vence)다. 이곳은 수많은 예술가들이 사랑했지만, 특히 '색채의 마술사'라 불리는 러시아 출신의 화가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이 생의 마지막 20년을 보낸 곳으로 더욱 유명하다.

생폴드방스 안내표지판에서 선 필자


그의 영혼이 깃든 이 마을을 걷는 것은 마치 한 폭의 서정적인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경험이었다.

16세기 흔적이 오롯한 돌길을 따라 흐르는 요새마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시간 여행이 시작된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생폴드방스의 골목길은 반질반질 닳은 돌바닥으로 이어져 있다.

이 돌길을 샤갈도 매일 산책하며 지중해의 따스한 햇살을 느꼈을 것이라 추측해 본다. 골목 좌우로는 아기자기한 상점과 갤러리, 아틀리에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고풍스러운 돌집 벽에 걸린 현대 미술 작품들은 과거와 현재의 예술이 공존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며 필자의 발걸음을 단숨에 멈춰 세운다.

색채감각이 뛰어난 생폴드방스 골목길


걷는 내내 샤갈의 작품에서 본 듯한 푸른 하늘, 붉은 지붕, 그리고 평화로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샤갈은 이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이 있었다'고 고백했는데, 그 빛이 지금 이 순간 필자 눈앞에도 황홀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 '동산'이라고 이름 붙인 집을 짓고, 말년까지 '사랑'을 주제로 한 서정시 같은 그림들을 무수히 남겼다고 한다.

샤갈길 표지판을 가르키는 필자


'샤갈과 예술가들이 사랑한 남프랑스 요새마을'이란 표지판이 말해주듯 생폴드방스는 유명인들이 사랑한 도시로도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곳은 이브몽땅이 시몬느 시뇨레와 결혼식을 올리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할리우드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밀월 여행을 온 곳으로도 유명하다.

마을 주민들이 많이모이는 '드골장군 광장'한 가운데에는 드골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해 프랑스 전통 놀이인 '페탕트'경기를 지켜보며 이브몽땅과 이야기하는 장면과
세기의 배우 그레이스 켈리가 1955년 칸느 영화제에 참석한후 생폴드방스를 방문했다는 기록을 표지판으로 세워놓고 있어 여행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드골대통령, 이브몽땅과 그레이스 켈리가
생폴드방스를 방문했다는 표지판에 선 필자


골목길 끝에 다다르니 지중해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마을 공동묘지가 펼쳐졌다.

이 평화로운 곳에 샤갈이 그의 두 번째 아내 '바바'와 함께 영원한 잠을 자고 있다. 화려한 기념비 대신, 그의 무덤은 소박한 석판으로 덮여 있다. 비석에는 그의 이름(MARC CHAGALL)과 생몰(生歿)연대만이 새겨져 있다. 그의 묘비 주변에는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올려놓은 작은 돌멩이들이 빼곡했다.

유대인의 전통에 따라 꽃 대신 돌을 놓아 '당신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라고 가이드는 귀뜸한다.

이 수많은 돌은 평생 고향을 그리워하며 떠돌았던 한 위대한 화가에게 바쳐진, 전 세계인의 진심 어린 존경과 사랑의 증표였다.

생폴드방스 공동묘지에서 샤갈의 무덤


샤갈은 그의 그림처럼 꿈결 같고 환상적인 고향 러시아 비테프스크를 마음속에 품고 살았지만, 생의 마지막 안식처는 이 아름다운 남프랑스 언덕 생폴드방스였다. 지중해의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잠든 그의 묘 앞에서, 필자는 샤갈의 그림 속을 떠다니는 듯한 염소, 꽃다발, 그리고 연인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생폴드방스는 샤갈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마지막 퍼즐 조각과 같았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눈으로 보는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색채 마술사'의 따뜻하고 서정적인 영혼과 조용히 교감하는 소중한 旅程이었다.

김창권 大記者

(본 칼럼은 필자의 개인 의견이며, 조중동e뉴스는 다양한 의견을 존중합니다. 본 칼럼이 열린 논의와 건전한 토론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정치관련 칼럼의 경우에는 "본 칼럼은 조중동 e뉴스의견과는 별개의 견해입니다"

<저작권자(c) 조중동e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