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많은 사람들이 이혼을 당연시 생각하고, 그 이혼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혼은 관계된 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을 서늘하게 만든다. 한 때는 서로를 죽도록 사랑해서, 서로 없이는 못 살겠다며 손을 잡고 결혼한 두 사람이 어느 순간 가장 적대적인 존재가 되어 마주 서 있기 때문이다. 한 둥지안에서 10년, 20년, 함께 밥을 먹고, 자녀를 키우며 같은 시간을 동고동락하며 살아온 부부가 결국 서로에게 등을 돌린 채,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제출한 이혼사유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부인은 남편을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으로, 남편은 부인을 “거짓말과 악의로 가득 찬 사람”으로 묘사한다. 부부가 서로의 장점만큼이나 서로의 단점을 그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알고 있기에, 그 약점의 급소를 향해 날카로운 비수들이 쏟아진다. 물론 이에 대한 글들은 변호사가 대신 써주지만, 결국 그 내용은 부부가 들려주는 입에서 나온다.
그들의 이혼사유를 살펴 보면, 문득 의문이 든다. 정말 이토록 서로에게 불행만 주는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 사랑했고, 또 어떻게 이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왔을까?
그리고 더 안타까운 의문도 따라온다.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와버린 것일까? 조금만 더 이해하고 조금만 덜 미워했다면, 달라질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사람과 사람의 인연은 어느 누구에게나 기적과도 같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단 한 사람을 선택해 가정을 이루고, 그 속에서 자녀를 키우며 삶을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선택이 아니다. 그렇기에 웬만해서는, 작은 오해와 감정의 깊은 골로 그 인연 전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특히 자녀가 있다면, 이야기는 더 무겁다. 부부의 관계는 부부 둘만의 세계가 아니다. 자녀의 정서, 기억, 미래가 그 안에서 성장하고 자란다. 한 가정이 깨질 때 가장 깊은 상처를 받는 것은 그들 당사자가 아닌 언제나 자녀들이다.
성경에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있다. 부부가 지금은 서로를 향해 원망과 분노로 가득 차 있다 하더라도, 한때는 그 누구보다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들이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불가능한 요구일지라도, 적어도 한때 사랑했던 사람을 완전히 미워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인생은 짧다. 속 시원하게 이혼하고, 각자의 길을 가든, 조금 더 참고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가든, 먼 훗날 후세 사람들의 눈에는 그 삶 모두가 비슷하게 보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조디 피코트가 "이혼은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라고 말했듯이
그들 당사자들이 어떤 선택을 하며 어떤 마음으로 그 선택을 감당하느냐에 달려있다.
이혼은 결코 가벼운 해결책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고민해야 하는 무거운 결정이다. 하지만 그 선택 앞에 서기 전에, 최소한 한 번은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아야 한다. “정말 이 사람과의 인연을 완전히 끝낼 만큼, 나는 모든 노력을 다했는가?”. “지금의 감정이 아니라, 인생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후회 없는 선택인가?”.
그 질문에 진심으로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들은 행복이든 이별이든, 그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 자체가, 그들이 살아가는 인생의 품격이고 인격이 되는 것이다.
<박상희 한국농어촌희망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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