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임 회피는 가장 빠른 신뢰 상실의 길이다

정치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해왔지만,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는 하나의 기준이 있다. 바로 책임의 무게를 스스로 짊어지고, 공은 부하에게 돌리는, 이른바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정신이다. 이는 단순한 윤리적 미덕을 넘어, 국민이 지도자에게 부여하는 신뢰의 토대이자 리더십의 핵심 기둥이다. 그러나 최근 한국 정치의 흐름 속에서 이 기본 중의 기본이 무너지는 장면들을 우리는 수없이 목격해왔다. 수많은 정치적 고비마다 지도자가 취해야 할 태도는 명확했다. “국정의 책임은 내게 있다”는 단 하나의 진실된 선언. 하지만 그러한 태도 대신, 잘못은 주변으로, 책임은 아래 부하직원들로 떠넘기는 모습이 반복되며 지도자의 도덕적 권위와 신뢰는 조금씩 침식돼 갔다.

공은 나누고, 과는 끌어안는 것이 지도자의 길이다

고대 제왕학에서 “장수는 패배를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말은 단순한 군사적 격언이 아니었다. 이는 조직의 생명을 지키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자, 구성원들이 리더를 신뢰하도록 만드는 핵심 장치였다. 전쟁에서 승리가 찾아오면 장수는 그 공을 병사들에게 돌렸다. 그러나 패배했을 때는 그 책임을 자신의 목숨으로 갚았다. 백성들은 그러한 리더의 진정성에서 마음을 모았고, 충성은 자연스럽게 뒤따랐다.

오늘날 정치 역시 다르지 않다.
국민은 지도자의 능력을 완벽함에서 찾지 않는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원칙을 지키는 사람인가이다.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자세, 국민 앞에 솔직하게 서는 진심, 이 세 가지가 모일 때 비로소 지도자는 국민의 마음을 되찾고, 국정의 동력을 다시 일으킬 수 있다.

책임 회피는 가장 빠른 신뢰 상실의 길이다

지도자가 위기 상황에서 “그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국정 운영의 중심축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국민은 논란 자체보다 ‘그 논란을 대하는 지도자의 태도’를 더 중요하게 지켜본다. 측근 논란, 부처 갈등, 공격적인 대야당 태도 등 여러 국면에서 지도자가 선택해야 했던 길은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그러나 그 반대의 모습을 보였을 때, 논란은 정리되는 대신 더욱 커졌고, 국민의 피로는 누적되었으며, 지도자의 권위는 스스로 깎아내리고 말았다.
책임을 외면한 그 순간, 리더십의 무게는 지도자를 떠나 국민들에게 전가되었다.

선공후사는 지도자의 마지막 보루이며, 가장 강력한 힘이다

선공후사는 ‘멋있는 말’이 아니라, 국가 지도자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리더십의 최종 원칙이다. 지도자는 공을 나누어 조직을 세우고, 과를 끌어안아 공동체를 지켜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은 지도자를 신뢰할 수 있고, 공동체는 혼란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다. 국민이 지도자에게 원하는 것은 거창한 성과가 아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너무나 단순하다.

위기 앞에서 원칙을 지켜주는 사람, 잘못 앞에서 도망가지 않는 사람, 책임을 끝까지 감당하는 사람이다. 그 진심 하나만 있으면, 국민은 다시 마음을 열고 지도자를 지지할 준비가 되어 있다. 선공후사는 결국 국가 지도자가 스스로 세워야 할 마지막 울타리이며, 동시에 국민이 지도자에게 부탁하는 단 하나의 요구이기도 하다.

발행인겸 필자 김명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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