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정의를 말하면서 정언명령을 능멸하는 자들

정의를 말하면서 이미 정의를 죽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들이 있다. 칸트가 말한 정의는 뜨거운 분노의 구호가 아니라 차가운 이성이 스스로에게 부과한 의무다. 그런데 요즘 정치판에는 이성을 말살하고 감정을 신격화한 자들이, 마치 자신들이 도덕의 대리인이라도 되는 듯 윤석열 대통령에게 내란 프레임을 씌우며 정의를 외친다.

이들의 정의는 보편성은커녕 자기 욕망에 맞춰 재단된 조악한 사적 명령에 불과하며, 무엇보다 무죄추정 원칙이라는 공화국 최소 조건조차 가볍게 밟아버린다. 그들은 인간을 목적이 아니라 정치적 도구로 다루고, 의심을 단죄로, 감정을 사실로 둔갑시키며 칸트적 법의 구조를 정면으로 능멸한다. 정의를 부르짖으며 정의의 껍데기만 남기고 속을 발라먹는 자들, 그 위선의 잔혹함이 지금 이 나라 대한민국에 만연해 있다.

II. 내란죄를 ‘선호의 메뉴’처럼 휘두르는 비이성의 유치함

내란죄는 공화국의 법적 상태 자체를 겨누는 최후의 흉기다. 그 무게를 아는 사람이라면 ‘내란’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린다. 그러나 일부 세력은 이 중차대한 죄명을 마치 패스트푸드 메뉴 고르듯 오늘은 이 프레임, 내일은 저 프레임 하며 가볍게 흔든다.

이쯤 되면 법은 그들에게 규범이 아니라 장식이고, 공화국은 그들의 유희장이며, 형벌은 공적 권위가 아니라 정치적 장난감일 뿐이다. 칸트가 말한 형벌의 의의 “도덕적 자율성을 가진 주권자의 최종 명령”은 이들의 손에서 복권 긁듯 소비된다. 법이 이렇게 가벼워지면 공화국은 무너지는 데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이미 쩍쩍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III. 선동은 정의를 훔치고, 본질은 이성을 살해했다.

국가가 몰락하는 진짜 순간은 탱크가 없어질 때가 아니라, 이성이 침묵할 때다. 선동가들은 정의의 언어를 훔쳐 입에 올리지만, 그 말끝마다 드러나는 건 이성의 철저한 살해다. 칸트가 말한 공적 이성은 그들에게는 귀찮은 장애물에 불과하다.

감정을 동원해 군중을 흥분시키고, 분노를 윤리인 양 포장하고, 특정 집단의 증오를 국민의 정의라는 허울로 포개는 그 방식은 히틀러의 선동이나 르완다 라디오의 증오 선전과 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선동은 언제나 정의의 목소리로 등장하지만 결국 정의의 기관을 하나씩 도려내며 공화국을 속절없이 붕괴시킨다. 감정이 법을 교살하는 순간 법은 기준을 잃고, 기준을 잃은 법은 오직 집단 감정의 스피커로 전락한다. 그것이야말로 공화국 붕괴의 전조다.

IV. 국민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국민은 독재의 원흉

칸트적 공화국은 성숙한 시민의 이성 위에서만 성립한다. 국민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국민은 항상 옳다’는 말은 정의가 아니라 대중 영합의 아첨이다. 국민도 속을 수 있고, 착각할 수 있고, 집단적 오류에 빠질 수 있다.

한 번 속으면 피해자지만, 속기를 반복하면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라 역사의 공범이다. 오류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국민은 민주주의의 주체가 아니라 선동의 원료가 된다. 롤스의 무지의 베일은 공정함을 위한 장치였지만, 선동의 베일은 무지의 영속을 위한 족쇄다.

사실에 관한 판단을 포기한 시민은 권리를 행사하는 주체가 아니라 선동가가 흔들면 기울고 외치면 따르는 정치적 자동인형이 된다. 공화국은 그런 인형들의 나라가 아니다.

V. 공화국은 정의가 침묵할 때 썩고, 선동이 고함칠 때 죽는다.

윤석열 대통령을 둘러싼 내란죄 논쟁은 결코 한 인물을 향한 공격이 아니다. 그것은 법을 어떻게 대하는지, 공화국의 근간을 얼마나 가볍게 다루는지, 이 나라 시민의 이성이 어디까지 몰려갔는지 보여주는 잔혹한 시험대다.

죄명이 정적 제거를 위한 무기로 오용되고, 감정이 판단을 대체하며, 자신의 허물을 덮으려 법을 남용하며, 선동이 이성을 압도하는 순간 공화국은 이미 내부에서부터 부패하기 시작한다. 정의는 조용하지만 단단하며, 선동은 시끄럽고 속이 비었다.

정의는 공화국을 세우고, 선동은 공화국의 기초를 갉아먹는다. 결국 선택은 구호보다 훨씬 냉혹하다. 우리는 이성의 공화국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선동의 향연 속에서 스스로 시민의 자격을 포기하고 공화국의 붕괴를 지켜볼 것인가.

이제 누구의 무지가 이 나라를 무너뜨리는지, 더 이상 지켜만 볼 수 없다.

고무열 박사 (안전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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