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문자 한 줄에 드러난 권력 ‘가족주의 공화국’

국회 본회의장에서 새어 나온 문자 한 줄이 이 정권 인사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형’과 ‘누나’가 대통령실 인사 라인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호출되는 모습을 보고 국민은 공적 시스템을 기대했다가 단번에 친목 단톡방의 실체를 목격한 셈이다. 이쯤 되면 국정 운영이라기보다 가족 경영에 가까운 분위기다. 국민이 원하는 건 절차인데, 실제 돌아가는 건 인간관계의 온도였다.

II. 민간 자리까지 뻗어 나온 ‘그림자 인사권’

더 황당한 건 논란의 자리가 대통령 임명직도 아닌 민간 협회장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실 비서관·부속실장이 거론된다면, 이 정권의 인사권은 이미 강줄기처럼 민간 지류 곳곳으로 흘러 들어가 버린 것이다.

공적 권한을 다루는 기관에서 사적 호칭이 오가는 순간 절차는 실종되고 기준은 사라진다. 이제 국민은 묻는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공적 시스템이고 어디부터가 사적인 영향력인가? 이 질문이 나오는 것 자체가 이미 신뢰가 무너졌다는 신호다.

III. 개인 사퇴로 덮을 일이 아니라, 구조가 썩었다.

김남국 비서관의 사의 표명은 불타는 집에서 재떨이만 치우는 격이다. 문제의 본질은 개인의 문자사용이 아니라 시스템의 체질이다. 누가 추천했고 어떤 통로가 열려 있었으며 어떤 방식으로 사적 네트워크가 공적 권한을 대리했는지 밝히지 않는 이상, 인사 시스템은 그대로다. 개인 하나 흘러 나갔다고 해서 구조가 정화되진 않는다. 곰팡이가 벽지 하나 떼어냈다고 사라지지 않듯 말이다.

IV. 결국 책임은 대통령

인사 시스템의 언어와 문법은 대통령의 리더십이 규정한다. 대통령실에서 ‘형·누나’가 자연스럽게 오간다면, 그건 실무자가 아니라 정권의 기강이 느슨해졌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공정과 상식을 말해왔다면, 그것이 가장 먼저 구현돼야 할 곳은 바로 대통령실 인사 체계다. 국가 인사에서조차 사적 호칭이 망나니처럼 뛰어다니는 정권이 “공정”을 말하면 국민은 묻는다. 이재명은 알고나 있었는가? 이 질문이 나왔다는 그 자체가 위기다.

V. 사적 국가를 막기 위한 제도적 방역

지금 필요한 것은 정쟁이 아니라 사적 통로를 봉쇄하는 냉혹한 제도 개혁이다. 비공식 추천과 친소 기반의 우회 경로를 제도적으로 차단하고, 누가 어떤 단계에서 인사에 접근하는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국정 운영은 구호가 아니라 절차가 만든다. 인사 검증의 기록을 명확히 하고, 대통령실과 민간 영역의 경계를 재정의하며, 사적 네트워크가 끼어들 여지를 원천 차단해야 한다. 사유화를 제어하는 건 해명이나 사의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필리핀 마르코스 독재와 친인척·특권 네트워크 인사로 마르코스는 사촌, 친구, 동창으로 정부를 채우며 크로니(crony) 자본주의를 만들었다. 공공사업은 측근에게 돌아가고 부패는 구조화되었으며, 결국 국가부도·독재 붕괴로 귀결됐다.

VI. 사건이 아니라 시스템의 경고, 국가 시스템은 누구의 것인가?

이번 논란은 문자 메시지 하나의 일탈이 아니라, 국가 시스템이 사적 관계에 길들어지고 있다는 경고음이다. 공화국의 인사가 친목 모임처럼 보인다면, 정책도 같은 의심을 받는 건 시간문제다.

권력은 투명할수록 강해지고, 사적일수록 웃음거리로 추락한다. 국민은 진영이 아니라 기준을 요구하며, 그 기준을 세울 책임은 대통령과 여당, 즉 권력의 정점에 있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귀결된다. 국가 시스템은 공화국의 것인가, 아니면 ‘형·누나’의 것인가?

고무열 교수(안전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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