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고 단아한 예진역의 황수정, 당시 최고의 스타였다.
– 황수정을 떠올리며
1999년, 대한민국은 <허준>이라는 사극에 열광했다. 국민 절반 이상이 TV 앞에 앉는 ‘국민 드라마’의 시대, 시청자들은 매회 허준의 의술과 인간미에 감동했고, 그 곁에 조용하고 단아한 예진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황수정이다. 그 이름이 가진 청초한 이미지는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대중의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한국 연예계 역사는 늘 그렇듯, 높은 사랑을 받은 스타가 어느 날 갑자기 깊은 낙하를 경험하는 일 또한 반복해 왔다. 황수정 역시 그렇다. 당시 그녀를 둘러싼 사건은 대중에게 너무나 강렬한 충격이었다. 이미지와 대비되는 뉴스는 연예계를 뒤흔들었고, 대중의 시선은 순식간에 동정과 비판, 충격과 혼란을 오갔다. 한순간의 선택이 인생 전체를 뒤바꾸는 비극적 사례로 남았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참으로 아까운 배우’라고 입을 모아 말하곤 한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수많은 청년의 꿈을 지켜보아 온 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필자가 특강을 하러 갔던 어느 늙은 고시생의 이야기다. 그는 한때 검사가 되겠다고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황수정과 결혼하고 싶어서요.” 소년 같고 또 순진한 이야기였지만, 그만큼 당시 대중이 황수정에게 품었던 호감과 이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건 이후 그는 모든 삶의 의지를 잃고 나락으로 떨어진 듯한 심정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만큼 스타의 추락은 때로는 먼 곳에서 그를 바라보던 이들에게도 깊은 상실감을 남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20년.
어느 중년의 신사와 커피를 마시던 자리에서도 반복되는 이야기를 들었다. “돈을 벌면… 황수정과 결혼하고 싶었죠.” 그 웃음 속에는 농담이었을지 모르지만, 동시에 지나간 시대가 남긴 하나의 상징이 담겨 있었다. 그만큼 그녀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배우였고, 많은 이의 마음속에서 ‘단지 한 명의 배우’를 넘어선 존재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황수정의 이야기는 한 개인의 추락만을 말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대중이 얼마나 쉽게 스타를 올려놓고, 또 얼마나 빠르게 내리꽂는지에 대한 잔혹한 진실을 보여준다. 우리는 종종 스타가 온전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한순간의 실수, 한순간의 약함이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규정해 버리는 구조, 그 안에서 인간은 너무나 쉽게 소모된다.
그녀는 세기의 배우가 될 수도 있었던 재능, 깊이 있는 눈빛, 단아한 존재감이 있었다. 만약 그가 계속 연기했다면 지금쯤 중견 배우로서 한국 드라마와 영화계를 풍성하게 빛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더 아쉽고, 더 안타깝고, 더 오래 기억되는 이름이 되었다.
그러나 인생은 한 번의 추락으로 끝나는 법이 없다. 대중은 쉽게 잊지만, 사람의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황수정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아름다움과 아쉬움,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의 복잡함을 동시에 상징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름을 떠올리며 다시금 묻게 된다. 과연 한순간의 선택이 한 사람의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누군가의 실수를 바라보며 너무 쉽게 돌을 던지고 있지는 않은가?
그의 이야기는 지나간 스캔들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우리 각자가 삶의 어느 순간에도 흔들릴 수 있는 존재임을, 그리고 인간에 대한 온전한 이해와 관용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조용히 일깨우는 거울과도 같다.
그래서 오늘도 문득 떠오른다.
참으로 아까운 배우였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인간적인 삶을 살아낸 한 사람으로서의 황수정, 그 이름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서 퇴색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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